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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일로 밤샘 21시간 근무.. 꿈-사랑? 밥 한끼-잠 한숨이 더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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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11년차 SW개발자가 전한 ‘하도급의 삶’
SW산업 종사자의 끝은… 서러운 A B C D

동아일보 | 입력 2013.10.04. 03:04 | 수정 2013.10.04. 09:45


《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종사자들은 하청, 재하청이 이어지며 갈수록 열악해지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4D+3C+ABCD=SW’.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희망마저 없는(Dreamless) 환경에서 담배(Cigarette)와 캔커피(Can coffee),

컵라면(Cup ramyon)으로 끼니를 때우다 아토피 피부염(Atopy)에 걸리고, 머리가 빠지고(Bald),

퉁퉁해지고(Chubby), 우울증에 시달리다(Depressed) 결국 업계를 영영 떠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

소프트웨어 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동력으로 꼽고 선도적 정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뒤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 로드맵을 6월까지 내놓기로

했지만 청와대와 주무부처의 이견으로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달 중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

경력 11년차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한정욱(가명·39) 씨를 지난달 30일 서울 홍익대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 씨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탈모 때문이라고 했다. 살짝 들어 보인 모자 아래로 머리칼 없는 정수리가 훤히 드러났다. 그는 “그래도 2년 전 시스템 통합(SI) 관련 업무를 할 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 ‘SW 인재’의 일자리 태반은 하도급업체

한 씨가 처음 SI업계에 발을 들인 건 대학을 졸업한 2002년이었다. 처음엔 대기업 계열사 등 규모가 큰 업체에 가고 싶었지만 막상 일자리가 나온 곳은 ‘갑-을-병-정’ 중 ‘병’ 혹은 ‘정’에 해당하는 말단 하도급 개발사뿐이었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은 크게 기업이나 기관의 시스템을 개발 관리하는 SI 시장과 백신 등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패키지 시장’으로 나뉜다. 전체 소프트웨어 시장의 90%가량은 SI 시장이다. SI 시장에 참여하는 업체 중 절반이 넘는 3400여 개가 매출이 10억 원 이하인 영세 업체다. 한 씨가 취직한 곳도 바로 그런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다.

그곳에서 맞닥뜨린 소프트웨어 개발 세계는 꿈꿨던 것과 너무 달랐다. 한 씨는 대기업 계열 SI업체에서 하청을 받아 1년간 사법부의 정보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던 시절이 특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한 씨는 “처음엔 이미 준비 중이었던 시스템을 수정만 하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가보니 실제로는 아예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이미 시스템 오픈 날짜가 확정돼 있었는데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지옥 같은 날들이 시작됐다. 관리자들의 닦달 속에서 개발자들은 잠자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보장받을 수 없는 ‘일개미’에 불과했다. 한 씨는 “때로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었는데 대부분 ‘맥 딜리버리(맥도널드 배달)’나 중국집 배달을 이용했다”며 “건물 안에 프로젝트를 발주한 기관의 직원용 구내식당이 있었지만 거의 이용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밥 한 끼, 잠 한숨이 그리운 개발자의 삶

시스템 오픈 3개월 전부터는 이틀에 한 번꼴로 21시간 연속 철야근무를 했다. 주말 출근은 기본이었다. 한 씨와 동료들은 담배와 커피로 잠을 쫓았다. 한 씨도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고 인스턴트커피를 여덟 잔 이상 마셨다. 그는 “나중에는 담뱃값이 아까워 독한 담배를 찾게 됐다”며 “하도 피곤해 개발자들끼리 ‘박카스가 페트병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탈이 났다. 탈모와 아토피 피부염, 위출혈이 함께 왔다. 병원에서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속에 인스턴트 음식으로 몇 달을 버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씨는 “피부가 갈라져 피가 나는데도 병원에 갈 수 없는 나 자신을 보며 비참하다 못해 ‘정말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살기 위해서였다.

그는 “급속히 기술이 변하다 보니 실력을 키우려면 공부가 절실하지만 그럴 시간이 전혀 없다”며 “이런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결국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도, 업계를 성장시킬 동력도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재 육성 전에 인재 탈출부터 막아야

한 씨의 사례는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서 흔한 사례다.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문제점으로 하도급 구조와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열악한 처우를 꼽는 전문가가 많다.

2000년부터 8년간 하도급 개발사에서 일한 개발자 A 씨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업 부담이 늘고 비용 절감이 최대 화두가 되면서 하도급 관행이 더 심해졌다”며 “정부나 공공기관이라도 상식적인 발주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기관들이 예산이 적다는 이유로 민간기업보다도 못한 자금을 내밀며 빠른 개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과거 하도급 개발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여성 개발자 B 씨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여성이라고 해도 출산·육아휴가는 꿈도 못 꾼다”며 “많은 여성 인재가 출산 후 직장을 떠난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하도급 단계가 이어질수록 업체를 찾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정작 개발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단축되고 임금도 줄어든다. 손영준 정보화사회실천연합 대표는 “보통 하도급이 한 단계씩 내려갈수록 임금이 평균 7∼15%씩 줄어든다”고 말했다.

하도급업체의 신입 개발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보다 낮은 시급을 받는 경우도 많다. 하도급 단계가 내려갈 때마다 월급이 주어지는 날짜도 평균 보름씩 밀린다. 게다가 발주자의 요구사항은 수시로 바뀌지만 그로 인한 추가 비용은 임금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업계에 만연한 하도급 관행과 열악한 대우가 고쳐지지 않고 ‘소프트웨어 강국’을 만들겠다는 건 구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1일 민주당 장하나 의원 등 국회의원 25명이 다단계 하도급을 방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임우선·김호경·정호재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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